채만식은 1950년에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난다. 1945년부터, 해방 후 그가 작고할 때까지의 1950년에 걸쳐 그는 일제 말기 자신의 친일 행위를 자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진보적 중간파의 입장에서 해방 직후 과도기의 혼란상을 여실하게 그려내고자 했다. ‘민족의 죄인’, ‘역로’를 통해서 일제 말기 지식인의 친일 행위를 자기비판하였고, ‘미스터 방’, ‘맹순사’, ‘논 이야기’, ‘낙조’등을 통해서 새로운 조국의 건설 과정에서 친일파가 다시 득세하는 민족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풍자하였다. ‘도야지’도 그 중의 한 작품으로 선거판의 혼탁상을 그려내고 있다.
채만식 1902-1950. 전북 옥구군 임피면 읍내리 태생. 중앙고보를 거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예과에서 수학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당시의 현실 반영과 비판에 집중되어 있다. 식민지 상황 하에서의 농민의 궁핍, 지식인의 고뇌, 도시하층민의 몰락, 광복 후의 혼란상 등을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근저에 놓여 있는 역사적 · 사회적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작품기법에서도 매우 다양한 시도를 한 바 있는데, 특히 풍자적 수법에서 큰 수확을 거두었다고 말할 수 있다.